물가에 서면 계절의 숨결이 먼저 다가온다.
겨우내 잔잔하던 물결이 3월엔 꽃샘추위를 이겨내 4월에야 따뜻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따금 춤을 추듯 일렁인다.
강둑을 따라 자라난 버드나무 가지는 연두 빛 신록으로 잎사귀를 틔울 준비를 마친 듯 부풀어 오르고, 그 모습만으로도 비로소 완연한 봄 내음이 났다.
햇살은 부드럽게 물 위를 쓰다듬고, 공기 속엔 겨울이 남긴 마지막 냉기조차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.
이 계절은 느리지만 분명하게, 삶의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듯했다.
강기슭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.
발 아래 자잘한 자갈들이 부드럽게 소리를 내고, 멀리서는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오른다.
이곳은 '강노울 길'이라 불리는 산책로, 이름처럼 해질녘이면 노을이 강물에 물들어 하늘과 땅, 그리고 내 마음까지 붉게 채색한다.
하루의 끝을 장엄하게 수놓는 그 순간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걷는다.
하지만 나는 노을보다도 그 노을을 기다리며 걷는 이 시간이 좋다.
속도를 내려놓고, 생각을 들여다보며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이 고요한 리듬이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문턱처럼 느껴진다.
발 밑에서는 어느새 부드러워진 땅의 기운이 느껴지고,
겨울 내내 얼어 있던 흙도 이제는 따스한 숨결을 품는다.
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진달래꽃이 별처럼 반짝이며 봄날의 향기를 한껏 퍼뜨린다.
바람은 꽃잎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며 겨울 동안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하나씩 깨운다.
그 속에서 나는, 어쩌면 잊고 지냈던 나 자신과도 마주친다.
피어나는 꽃처럼, 말랑해진 흙처럼, 나의 마음도 이 계절에 맞춰 다시금 살아난다.
걷는다는 건 단지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라 계절과 마음이 나란히 숨 쉬는 일이라는 걸 이 길 위에서 다시금 깨닫는다.
강과 절벽 사이 좁은 잔도를 걷다 보면
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지면서 시간의 흐름마저 잊게 된다.
물소리는 고요하게 마음을 씻어내고, 절벽 위에 기대 선 나무들은
말없이 나를 응시하며 지나온 시간을 다독여준다.
이 길은 그저 봄을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, 내 안의 겨울을 이겨낸 흔적들이 피어나는 여정이다.
나는 오늘, 이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에서 마침내 나를 다시 만난다.
햇살 아래, 바람 속에, 꽃잎 사이에 살아 있다는 것의 조용한 기쁨을 가만히 되새기며 나는 천천히, 그러나 깊이 걸어 나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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